그동안 위패·영정 안치 사실상 반대한 화성시에 강한 울분 토해

지난 3일 전국이주노동인권단체, 희생자 추모행동으로 모이기도

지난달 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가 발생한지 열흘만인 지난 4일에야 화성시청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영정과 위패가 설치됐다. 유족들은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며 영정과 위패를 뒤늦게 설치한 화성시에 강한 울분을 토했다.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유족들이 4일 오후 경기 화성시 화성시청 1층 합동분향소에 고인들의 위패와 영정을 안치했다. (사진 경기일보 캠처)

 

지난 4일 오후 3시경 경기 화성시청 1층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의 영정·위패 봉안식이 열린 가운데 유족들은 희생자의 얼굴과 이름이 새겨진 영정·위패를 들고 화성시청까지 침묵 속에 걸었다.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유족들이 4일 오후 경기 화성시 화성시청 1층 합동분향소에 고인들의 위패와 영정을 안치했다. (사진 경기일보 캠처)

 

이날 봉안식에서 유족들은 또 다시 오열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가 통곡하다 바닥에 쓰러져 의료진의 부축을 받았는가 하면, 아내를 잃은 남편은 흰 장갑으로 희미한 미소를 띤 고인의 영정 사진을 매만지며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또 다른 유족은 영정 사진 속 고인과 이마를 맞대며 “제발 잘 가”라고 수차례 되뇌이기도 했다. 추모객들도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옮기는 것을 지켜보며 흐느낌과 탄식을 금치 못했다.

▲화성 아리셀 화재 참사 유족들이 4일 오후 경기 화성시 화성시청 1층 합동분향소에 고인들의 위패와 영정을 안치했다. 한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사진 오마이 뉴스 캠처)

 

앞서 화성시 측은 시청 옆 모두누림센터 지하 2층으로 합동분향소를 옮기라고 요구했다. 이에 유족들은 오전 11시께 정명근 화성시장 집무실을 찾아가 면담을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유족들은 봉안식을 앞두고 화성시에 관련 준비를 부탁했지만 화성시가 들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와 유족이 영정·위패를 자체 제작해 분향소에 안치했다. 분향소에는 15개의 영정사진(한국인 2명, 중국인 13명)과 20개의 위패(한국인 3명, 중국인 16명, 라오스인 1명)가 놓였다(사망자 23명 중 나머지 3명은 미참여).

이날 위패 및 영정 봉안에 앞서 화성시 관계자는 “시청에 마련된 분향소는 임시 추모공간의 성격이다. 이곳에 위패 및 영정이 봉안될 경우 시민 행정서비스 제공에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거절한 것”이라며 “추후 정식 합동분향소를 조성할 계획이며, 후보지에 대해 대책위와 협의해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 이주노동자는 안전하게 일하고 싶다”

전국이주노동인권단체,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행동으로 모여

이주노동자평등연대를 포함한 중국동포단체연합대책위원회와 이주노동인권단체들이 지난 3일 오후 7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행동’을 개최했다.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행동이 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이 추모제는 화성시청 앞 추모제와 동시간대 진행됐다.

  

이 추모제는 화성시청 앞 추모제와 동시간대 진행됐다. 이들은 “이어지는 참사에, 계속되는 이주노동자 희생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더 분노하고 더 행동하기 위해 우리는 모이겠다”고 밝혔다.

이날 중국동포들과 이주민, 그리고 시민들을 포함한 150여 명의 참석자들은 위험이 외주·이주화된 현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더 이상 목숨을 잃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추모행동에 참석한 중국동포단체연합대책위원회(공동 대책위원장 김호림, 김예화) 박옥선 고문은 “금번 참사 희생자 중 내국인이 5명(귀화 중국동포 1명 포함), 중국동포를 포함한 중국 국적자가 17명, 그리고 라오스인 1명으로 중국 출신 이주노동자의 피해가 유독 집중되고 심각하다”고 말하고 나서 “재난 앞에서 내·외국인이 겪는 피해의 무게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피해자에 대한 차별 없는 보상은 너무 당연하며 내국인과 외국인을 이원화하여 접근하고, 유가족을 갈라치기 할 알량한 타산을 정부 당국이 혹여라도 갖고 있다면 진즉에 단념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행동이 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이 추모제는 화성시청 앞 추모제와 동시간대 진행됐다.

 

이날 이주노동자들의 대표로 나선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30년의 역사가 넘어가도록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차별과 착취가 그치지 않으니 산업재해 사망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번 아리셀 참사도 이주노동자들을 인력업체를 통한 불법 파견 노동을 지속하고 안전대책을 등한시한 인재(人災)”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안전에 대한 사업주 책임 강화, 정부·지자체의 영세 사업장 안전 개선 지원,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 강화 및 전담 부서 설치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날 외국인이주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 석원정 대표(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며칠 전 화성시청에 설치된 분향소와 공장을 방문했다. 분향소에는 영정도 위패도 없었다. 그저 꽃 수백 송이만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가뜩이나 참담함에 가슴이 먹먹하던 차에 ‘그 어느 분의 사진도 이름도 없는’ 분향소를 보니 저절로 탄식이 터져나왔다”고 말하고 나서 “여러 이주노동자의 죽음을 보았지만, 이번 화성 아리셀 노동자분들의 죽음만큼 참담한 죽음은 없었던 것 같다. 23명의 노동자 사망, 그 중 18명 이주민노동자 사망. 이 화성 아리셀 사태는 한국의 중대재해사례에도 남겠지만, 이주민의 유입의 역사에도 길이길이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화성 아리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행동이 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이 추모제는 화성시청 앞 추모제와 동시간대 진행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서울고용노동청 앞~명동성당~롯데백화점 맞은편~을지로 입구 로터리~시청동편까지 행진하기도 했다.

<문현택 기자>